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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遷都)는 천도(天都)로 하여야 > 대한민국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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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와대

국민청원
국민청원 4년, 국민이 세상을 바꿔 온 국민청원입니다

청원종료

천도(遷都)는 천도(天都)로 하여야

참여인원 : [ 132명 ]

  • 카테고리

    교통/건축/국토
  • 청원시작

    2021-02-15
  • 청원마감

    2021-03-17
  • 청원인

    kakao - ***
  1. 청원시작

  2. 청원진행중

  3. 현재 상태

    청원종료

  4. 답변완료

청원내용

국민청원
청와대 이전에 관한 국민제언 遷道(천도)는 天道(천도)로 하여야.....

<<차례>>
1 청와대와 경복궁 풍수의 올바른 재해석.
2 관악산은 도적과 강도역할을 하는 산이다.
3 청와대 격국(格局)은 둘로 쪼개지고.
4 경복궁터를(청와대) 지목한 천여 년 전 선각자들.
5 남산下에 세계제일의 왕도처(王都處) 천시원(天市垣)이...
6 풍수지리에서 혈(穴)을 검증 한다면?
7 풍수지리에서 혈(穴) 이란?
8 혈에서 발생하는 특별한 파동 에너지.
9 천시원 혈 위에 궁궐이 세워지면.
10 지구별에는 이미 혈 위에 궁궐을 세워 부강한 국가가 된 예가 있다.
11 세계의 중심국으로 발돋음할 위대한 통일 대한민국!
전설속의 계룡 도읍지가 용산의 천시원(天市垣) 이다.

1 청와대와 경복궁 풍수의 올바른 재해석

2020년에 이르러 국가가 나서서 정식으로 청와대를 옮기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니 우리 대한민국에 정녕코 천운(天運)이 와 닿았구나 하는 생각으로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국민 중에 한사람입니다. 경복궁과 청와대가 위치한 북악산 기슭에 도읍지를 정한 후 풍수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국운은 우리는 역사로 보아왔고 지금에 이르는 현대사도 엄중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국운에 절대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왕도처(王都處)의 선정은 이씨조선이 그랬듯이 정치적인 논리로 정하여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우리는 얻고 있습니다.
경복궁을 세울 당시 무학 대사가 참여했다고는 하나 정사를 보면 그의 역할은 거의 없었고 혁명세력의 군신들이 나름대로 풍수학을 익혀 북악산 기슭에 왕도처를 정했지만 그들은 이론적 학문으로 중무장된 어설픈 아마추어에 불과하여 무지함만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현재 청와대가 들어서있는 북악산의 풍수적 요인을 올바른 해석으로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때 새 왕도처를 정하는데 큰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겨 문제인 대통령님께 머리 숙여 청원서를 올립니다.

본인은 삼십년 가까이 풍수학에 매진하여 연구해온 풍수학자로서 오로지 우리 대한민국이 부강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건강한 국가가 되길 뼈 속 깊이 바라는 국민입니다.
풍수지리는 추호의 어긋남이 없는 우주정신이 깃든 자연과학의 산물입니다.

세 컷의 사진을 살펴보겠습니다.

원효봉

위의 사진은 예산 가야산에서 이어 나온 원효봉 입니다.
사진과 같이 산봉우리의 형상이 아름답고 한쪽으로 기울어짐 없이 좌우대칭이 바르게 잘 어울려 수발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원효봉이 예쁘게 보이는 인근 산기슭에서 거주하며 태어난 사람들의 인성은 저 산과같이 정직하고 바른 성품을 갖고 태어납니다.
그 증거로 저 원효봉 기슭에서 윤봉길 의사가 태어났습니다.
나라를 위해 내 한 몸 기꺼이 받친 의인입니다.


닭제산

저 산봉우리 역시 한쪽으로 기울어짐 없이 좌우대칭이 바르며 곡선이 아름답고 산봉이 단정 수발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산은 홍성의 닭제산에 있는 산봉입니다.
이 산봉우리를 의지하고 그 아래 산기슭에서 사는 사람들 역시 인성이 바르고 정직한 성품의 사람들로 태어납니다. 역시 그 증거로 저 산봉우리 기슭에서는 성삼문, 최영장군이 태어났습니다. 이 두 위인들은 우리나라 만고의 충신들입니다.
특히 이 두 충신들의 흥미로운 점은 100여년의 시차를 두고 한 집에서 태어난 점입니다.
지금도 이 고장 사람들은 심성이 정직하고 온화하며 바릅니다.
정녕코 풍수지리라는 것은 사람들이 꾸며낸 판타지가 아닙니다.
거주하는 주변의 산천정기는 본인들도 모르게 몸과 마음에 머금기 때문에 격국과 형상에서 오는 영향을 그대로 받습니다. 전국적으로 볼 때 충청지역 특히 홍성과 예산 인근 지역, 천안은 다른 지역보다 국가유공자, 충신이 제일 많은 이유가 단정하고 수발한 산세에서 오는 산천정기의 영향 때문입니다,







북악산

온 국민이 알다시피 경복궁과 청와대가 들어서있는 북악산입니다.
대통령님은 이 사진을 보고 앞에 두 컷의 사진과 어떤 차이를 느끼시는지요?
북악산은 보이는 대로 산봉우리가 바르지 못하고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으며 상당히 거칠고 험합니다. 이런 형상은 앞에 두 컷의 사진과 비교할 때 무엇을 의미 할까요? 더구나 불길하게도 그 산기슭 정면에 개인집도 아닌 한 국가의 궁궐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은 자연히 삐딱한 산봉우리 같이 정신이 바르지 못한 간신들이 나라에 득시글거리게 되어있습니다. 나라에 간신이 많다면 어찌될까요?
간신들은 국민들 등에 빨대를 꽂고 왜곡된 정의로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우고 교묘히 개인의 영달을 채웁니다. 순백의 민초들 영혼은 사악한 선동에 넘어가 간신들을 뒤 따릅니다.
국민여러분들은 우리 대한민국이 정의로운 나라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 산봉우리같이 정치는 항상 불의가 활개 치는 대세에 있고 정의는 그 틈바구니에서 고군분투하는 형세에 있으니 민초가 원하는 개혁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더욱이 청와대는 평지에 있는 경복궁보다 살기(殺氣) 충만한 북악산 본신 쪽에 있는 관계로 현대사는 과거 이조 500년 역사보다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다이나믹한 불의(不義)의 정치사로 얼룩져 있습니다.
여기에 대통령들의 멈추지 않는 비운은 덤으로 자리 잡았으니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이조이후 지금까지 600년 동안 빗나간 위정자들의 비겁하고 속 터지는 정치행위를 겪었으면 됐지 민초들이 얼마나 더 불의를 겪어야 할까요? 우리의 옛 선각자들이 남겨놓은 기록을 살펴보면 앞으로 4년 전후에 통일이 틀림없이 분명하게 옵니다.
현재 이대로라면 통일 이후에도 개혁이란 구호가 반드시 등장합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국정은 남쪽세력, 북쪽 세력이 의견을 조율하지 못하고 피 터지게 당쟁하는 모습이 떠올려 지는 것이 기우(杞憂)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북악산 아래 청와대에서 국정을 돌보는 한 개혁은 이루기가 매우 힘듭니다. 청와대가 북악산 아래에서 떠날 때 그 많은 개혁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그 날이 오면 우리 대한민국은 개혁뿐 아니라 국운이 바뀌어 지금 보이는 세상이 아닌, 전혀 다른 큰 세상을 설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관악산은 도적과 강도역할을 하는 산이다(窺山규산)

이제까지 풍수학계에서는 경복궁과 청와대를 중심에 두고 북악산은 주산이요, 인왕산은 우백호이며, 남산은 안산이 되고, 관악산은 조산이 되어 명당이 된다고 이씨조선의 혁명파들이 명분으로 삼았고 지금까지 이 학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지구별의 자연산천에는 일반인은 모르는 아니 풍수인 들도 잘 모르는 절묘한 질서와 법칙이 숨겨져 있습니다. 과일나무의 꽃과 열매는 나뭇가지의 맨 끝, 여린 가지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치라서 사람들은 이에 대하여 관찰의 대상이 안됩니다.
그런데 풍수지리에서 소위 명당이라고 불리어지는 혈(穴)의 존재가 산줄기의 맨 끝에 열매처럼 맺히는 것입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산봉 혹은 산줄기가 부드럽고 순해야 되며 단정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거칠고 험하고 못생긴 산에는 혈을 절대로 못 맺습니다. 살기(殺氣) 때문에 혈이 싫어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뭇가지 맨 끝 여린 가지에 피는 꽃이 아름다운 조화로움이 있듯이 순한 산줄기 맨 끝에 맺히는 혈(穴)도 주변산천이 꽃잎처럼 천연적으로 조화로움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질서는 자연계에 불변의 법칙입니다.
풍수지리의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질서 때문에 혈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한결같이 좌청룡, 우백호, 현무, 주작, 조산 같은 풍수학에서 요구하는 사격(砂格)들이 병풍처럼 천연적으로 잘 갖춰져 있습니다.
수천 년 전의 선지자 들은 말없는 산천에 이 같은 기이한 법칙이 있음을 알아채고 이러한 자연계에 존재하는 신묘한 법칙을 정리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풍수학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풍수지리가 설이 아닌 과학의 대열에서서 평가 받아야 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대중이 배우고 있는 풍수이론은 혈을 찾아내는 최종의 법칙을 온전히 적시하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이유는 혈을 창조한 위대한 창조주의 의중을 엿보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풍수서 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용어가 있습니다.
천장지비 (天藏地秘) 하였으니 허욕(虛慾)을 내지 말라!
분명 부근에 혈이 있건만 자세한 설명은 없고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겼다”는 글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아무나 아무 때나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는 하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씨조선의 초기 군신들이 풍수학을 내세워 도읍지를 정한 것은 풍수의 기본도 헤아리지 못한 무식배의 소행이라 볼 수 있습니다. 혈도 못 맺는 험하고 거친 악산(惡山)기슭에 풍수이론을 억지로 꿰맞춰 경복궁을 세웠기 때문이지요.
경복궁같이 혈을 못 맺는 곳에서는 모든 사격(砂格)들은(주변 산봉들의 배치) 당연히 불합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산은 인왕산과 함께 이어져 백호안산이 되어야 하는데 중간에 끊어져 인왕산과 단절 되어 불길하며 이는 내 집 담장이 뻥 뚫린 이치와 같고 뻥 뚫린 허약한 담장너머로 관악산이 창칼로 무장하여 안채를 농락하는 날강도의 형상입니다.
관악산은 조산이 아니고 풍수학에서 말하는 도적과 강도역할을 하는 규산(窺山)인 것입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큰 힘으로 안채를 넘겨다보는 형국이니 오늘날까지 외적의 침입과 간섭으로 바람 잘날 없는 허약한 국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날강도인 관악산이 조산 대접을 받고 있었으니 국정이 어찌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이씨조선이 들어서면서 중화사대주의가 국시로 자리 잡은 연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와 같이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면 강도의 기운으로 가득찬 관악산과 남북 정면으로 마주보게 되어 충(衝)이 되어 항상 전쟁의 기운이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관악산
인왕산과 남산 사이가 끊어져 그 사이로 관악산이 경복궁과 청와대를 넘겨다보는 형국입니다.
얕고 허술한 담장 너머로 기치창검(바위산을 말함)으로 무장하고 안채를 농락하는 형체가 완연합니다. 풍수지리의 이름으로 이러한 주변 산천의 조건을 분석하는 것은 그러한 셋팅된 조건들은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인간들에게 산천의 정기가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소위 말하는 개인에게는 운이요, 국가는 국운으로 나타나니 말없는 산천의 가르침, 더 나아가 우주의 가르침이 아닐까요?

3 청와대의 격국(格局)은 둘로 쪼개지고...


인왕산 중턱에서본 남산
사진 속에 우뚝 솟은 남산을 중심으로 왼쪽은 동대문방향 조산이 있고 오른쪽은 관악산방향 가짜조산이 배치되어 격국이 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또 하나 풍수적 결함은 동대문방향 먼 곳, 양평 쪽에 여러 겹의 산줄기가 진짜 조산에 해당되는데 이곳과 가짜조산인 관악산 사이에 남산이 중간에 우뚝 서있어 격국(格局)은 좌우 둘로 갈라져 있어 아주 불길한 형세입니다. 동대문 방향에 멀리 있는 조산은 청와대에서 볼 때 옆으로 배치된 관계로 실제 조산이면서도 조산 역할을 할 수 없는 형세입니다.
조산은 앞에 있어야 제격인데 앞에는 강도 산인 관악산이 버티고 있으니 격국이 둘로 쪼개진 이러한 형세는 국론이 분열됨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풍수적 요인으로 경복궁과 청와대가 안고 있는 결함을 말한다면
첫째 주산이 기울어져 나라에 간신이 많아 항상 불의(不義)가 활개 치는 대세에 있고,
둘째 북악산이 바위가 드러나 거칠고 험하여 겁살, 흉살의 기운으로 나라에 창칼의 난이 많으며,
셋째 우백호인 인왕산과 남산사이가 저함하여 그 너머로 큰 관악산이 안채를 농락하는
형세는 외압과 외침의 기운이 멈추지 않아 전쟁의 기운과 사대주의 사상이 사라지지 못 하고 있고,
넷째 조산이 있으되 조산기능을 못하고 남산으로 인하여 실제 조산과 가짜조산 관악산이 둘로 쪼개져 동강난 격국이 되었으니 당쟁과 국론이 분열됨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세 때문에 이씨조선이후 권력의 속성을 뛰어넘는 피 터지는 당쟁은 지금 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분열의 최후는 나라까지 동강내고 말았습니다.

조산(朝山)

<<동대문 방향 양평쪽 에 겹쳐져있는 여러 산줄기>>

멀리서 여러 산맥들이 늘어서있는 저 형상은 전형적인 조산의 교과서 같은 모습입니다.
본시 조산은 앞쪽에서 조응을 해줘야 정상인데 청와대에서 볼 때 왼쪽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신 앞에는 강도산 인 관악산이 무례하게 버티고 있고...
이씨조선 초기 무학대사에 관한 야사에서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등지고 궁궐을 세울 것을 주장했다는 설도 조산의 위치가 앞에 바르게 있게 되어 나온 이야기입니다.
인왕산 아래도 결함투성이지만 북악산 기슭보단 낫기 때문이지요.
궁궐의 뒷산을 북악산으로 했던 인왕산으로 했던 피할 수 없는 치명적 결함은 높은 남산으로 인하여 격국이 두 쪽으로 갈라진 일입니다.

이러한 풍수적 결함으로 우리 사회상을 빗대어볼 때 우리의 과거 역사를 되짚어볼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반만년 역사를 풍수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크게 둘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조선시대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는 매우 역동적인 국가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장수왕 광개토대왕 같은 훌륭한 왕들을 위시해서 국가의 위기 때마다 을지문덕 양만춘 같은 용맹과 지략이 뛰어난 장수들이 있어 외적과 맞서 싸워 고구려를 위기에서 구해냈습니다.
고려시대에도 거란군이 쳐들어왔을 때 강감찬 장군이 70노구를 이끌고 친히 전장을 지휘하여 거란군을 물리치고 고려를 위기에서 구해냈으며 문신인 서희장군도 거란군 80만 대군을 세치 혀로 담판을 이끌어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들을 철수 시키고 오히려 고려의 영토를 더 늘리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이와 같이 고구려, 고려시대에는 국난이 닥치면 관민이 일심단결 하여 외적을 물리치고 국가의 존엄을 세웠지만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국가의 존엄은 그 이전 시대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외적이 침입하면 당당히 맞서 싸우는 용맹한 기상이 조선시대로 건너오면서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입니다. 조선이 시작되자마자 피를 부르는 왕자의 난이 일어났고 70년도 안되어 사육신의 처참한 참극이 일어났습니다.
조정은 중국을 대국으로 삼는 사대주의로 국시로 삼았고 아예 군대 없는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왕과 대신들이 간신이 되어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이순신을 시기, 모함하여 갖은 문초를 받게 하고 백의종군으로 강등하여 수모를 겪게 합니다.
이순신이 전사하는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 나설 때 이순신은 살아서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전투에 이겨 살아남아도 기다리는 것은 왕과 간신들이 만들어놓은 역모 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량해전이 역모 죄였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간신들은 눈썹하나 까딱 않고 벌렸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제대로 한번 싸우지도 못한 채 수모와 굴욕을 당했습니다.

고구려, 고려와 같은 땅이요, 같은 민족인데 어찌 이리도 허약하고 무능한 나라가 되었습니까? 그 용맹무쌍하던 기상은 다 어디로 갔는가요?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 폐허가 된 것을 구한말 때까지 270여 년간 그대로 방치 했었다는 것은 조선의 국격을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요? 정의를 잃은 위정자들은 결국 나라를 넘겨주고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적 상황이 문제가 되는 것은 오늘날에도 과거의 역사 그것과 한 치 오차 없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풍수적 결함에서 오는 무서운 살기(殺氣)로 인하여 국론이 항상 분열되니 정치력은 조선시대의 당파와 다름없고 주변 강대국들의 세력 다툼이 발호할 때 세론가 들은 구한말의 혼돈의 시류와 같다는 논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청와대가 지금의 장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혼돈의 시대는 약소국의 비애와 함께 무한히 반복됨을 끊어낼 수 가 없습니다.

서구식 교육에 길들여진 현재의 세대들에겐 풍수지리라는 것이 한낮 허구로 가득 찬 미신적 학문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기에는 풍수학에 직간접으로 관여하여 종사하는 풍수인 들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청와대와 경복궁터의 사례처럼 좋은 터에 궁궐을 세웠으리라 믿고 있었는데 최악의 흉지였다니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풍수학 자체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수지리 자체는 의심 없는 진리의 자리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풍수학을 연마하는 깊이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의 판단으로 풍수지리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풍수지리학은 자연산천에 혈(穴)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의해서 파생된 학문입니다.
이는 혈은 진리에 있으나 풍수지리학은 진리가 될 수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풍수학을 학문위주로 연구했을 때 혈의 존재와 혈이 맺는 법칙과 질서를 헤아리기 어려우니 혼돈과 혼란한 문답만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풍수지리가 진리의 자리에 있을 때 개인의 운명은 물론 국가의 운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또 한편 풍수지리는 철저히도 산천의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하는 학문입니다.
왜냐하면 산천의 겉모습 속에는 우주의 뜻과 정신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지나온 풍수역사 천 수백 년 동안 심오한 풍수지리에 통달한 인사는 겨우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밖에 안될 정도로 매우 드물었습니다.


4 경복궁터를(청와대) 지목한 천여 년 전 선각자들

여기 그 다섯 사람의 손가락 안에 드는 두 분의 선각자의 글을 소개 합니다.
고대의 우리나라 선사들은 왕도처에 대한 관심이 유달라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애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양학은 자기네가 앞서있다고 하는 중국에서 조차 찾아 볼 수 없는 사례입니다.
아마도 먼 후대의 자손들에게 도읍지터의 중요함을 알리기 위해 남긴 글이라 생각 됩니다.
경복궁 터가 흉지 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궁궐을 짓는 자가 있음을 알리는 1300년 전 신라시대 의상대사의 삼한삼림비기에 있는 글 일부입니다.
去松岳而都者必於是 然山骨聳峭 面水潺流
거송악이도자필어시 연산골용초 면수잔유

無十年豊無三十年安 害事宰相比肩而立 朝野無議定之日
무십년풍무삼십년안 해사재상비견이립 조야무의정지일

人民無樂土之心 歷代則過於王氏 然信讒之主斥佛之臣
인민무악토지심 역대즉과어왕씨 연신참지주척불지신

終敗國威 擇都者若聽僧言 則稍有存延之望
종패국위 택도자약청승언 치초유존연지망

若鄭姓人是非之 傳不五世簒奪之禍生 歲讒二百板蕩之亂至愼之
약정성인시비지 저불오세찬탈지화생 세참이백판탕지란지신지

<< 해설 >>
송악을 버리고 반드시 이곳에 도읍을 하는 자가 있으리라. 그러나 산골이 험하게 솟고 물이 얕게 흐르니(청계천) 10년 풍년이 없고 30년 평안이 없고 일을 그르치는 재상이 즐비해 조야에는 의논이 정해질 날이 없으며 백성들은 흙을 좋아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다. 왕조의 역대는 왕씨(고려) 보다 길 것이나 참소를 믿는 왕과 불교를 배척하는 신하로 인해 결국 국위가 무너질 것이다. 도읍을 택하는 자가 승려의(무학대사) 말에 귀를 기울이면 얼마쯤 존속할 수 있으나 만약 정씨 성을(정도전) 가진 자가 시비를 건다면 5대가 못되어 왕위 찬탈의(丁丑之變) 화가 생기고 200년이 되면 판탕의(임진왜란) 난리가 날것이니 조심하라.

이글은 의상대사가 북악산 기슭에서서 주변 산의 형세를 보고 혜안을 내는 글입니다.
나라는 가난하고 조정에는 간신이 많음을 지적 하면서 결국은 나라가 무너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눈여겨 볼 점은 북악산 아래 도읍지 선정은 우리 민족이 피하지 못할 숙명이라는 점입니다. 풍수적으로 최악의 망지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은 우리 민족에게 질긴 고난과 시련이 예약된 왕도처를 점지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대한의 민초에게 의지와 정신세계를 성장 시키려고 힘든 과정을 선택 했을까요?

또 하나의 이와 비슷한 1100년 전 도선국사가 남긴 도선비기의 글을 살펴봅니다. 왕건의 탄생과 고려건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도선국사는 그가 살았던 고려시대를 뛰어넘어 이씨조선의 등장과 북악산 기슭에 도읍지를 세운후의 글인데 조선의 패망은 물론이고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 언급을 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지금의 남북대치와 함께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통일을 얘기했고 최후에 전설속의 계룡도읍을 완성 하는 것으로 끝맺음을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에서도 경복궁을 세운 후 나라에 간신이 많음을 한탄하면서 사육신, 임진왜란, 병자호란, 을 예지했고 6,25동란, 통일에 이르는 현대사의 언급에 놀라울 뿐입니다.

玉龍子問, 一行先生曰 三韓山川何如 奸臣盈國
옥룡자문, 일행선생왈 삼한산천하여 간신영국

賢良之臣 非命損身峽裏寃魂 與山花而동 赤江上毅魂
현량지신 비명손신협리원혼 여산화이동 적강상의혼

與湖水而同碧 壬辰島夷蠹國 可依松栢 丙子坎胡滿國
여호수이동벽 임진도이두국 가의송백 병자감호만국

山不利水不利 利於弓弓 一枝單傳于三其代 無陽之主
산불리수불리 이어궁궁 일지단전우삼기대 무양지주

胡爲而賢 多鬚之弟 奈何篡運 旨于戊申 野有無將之卒
호위이현 다수지제 내하찬운 지우무신 야유무장지졸

城有孤立之主 一介流言三郡虛驚 壬午之年父子恩絶
성유고립지주 일개유언삼군허경 임오지년부자은절

虛胎之婦 藏于金壺 尺布可分 白衣而靑 智士之意未遂
허태지부 장우금호 척포가분 백의이청 지사지의미수

愚夫之言必中 女主兼政 甲子之罪 乙者被之 東隣之禍
우부지언필중 여주겸정 갑자지죄 을자피지 동린지화

西隣遍黨 無嗣之主 寄位兩面 有子之將 閒臥一州
서린편당 무사지주 기위양면 유자지장 한와일주

若逢聖年 乘白鷁而先西 非山非野 野着靑衣而自南
약봉성년 승백익이선서 비산비야 야착청의이자남

非胡非倭 其當寅卯 南北始形鼎峙 扶李刈棘 國器甫定
비호비왜 기당인묘 남북시형정치 부이예극 국기보정

一國是安 是誰之功 唯彼奠邑 聰明神睿
일국시안 시수지공 유피전읍 총명신예

起兵西塞 天子嘉乃 三隣助安 鷄龍山 三子尊安
기병서새 천자가내 삼린조안 계룡산 삼자존안

<<해설>>
옥룡자가 묻고 일행 선생이 답한다.
삼한산천이 어떠한가? 간신이 나라에 가득하고 현량한 어진 신하가 비명에 몸을 손상당하여 죽으니(사육신) 그 원혼이 사무처 산하의 붉은 꽃이 되고 강위에 굳센 원혼은 호수의 푸른 물처럼 되리라. 임진년에 섬나라 오랑캐가 나라를 좀먹으니(임진왜란) 송백에(이여송, 이여백) 의지하고 병자년에 북쪽의 오랑캐가 나라에 가득하니(병자호란) 산도 이롭지 않고 물도 이롭지 않다. 오직 궁궁이 이롭다. 인명 셋 중에 하나만 살아남아 대를 이을 것이다.
힘없는 군주가 어찌 어진 정사를 펼 수 있으며 장성한 아우가 국운을 빼앗을 형세이다. 무신년이 되면 들에는 장수 없는 병사들이 있고 임금은 성안에 고립되어 있다. 한낱 유언비어가 세 고을을 어이없게 놀란다. 임오년에는 부자지간의 관계가 끊어지고(임오군란) 유산한 부인이(명성황후) 금호에 숨는다.
한자짜리 베도 나누어지고 흰 옷은 푸른색이 된다. 지혜 있는 선비의 뜻은 통하질 않고 어리석은 자의 말은 반드시 맞는다. 여주가 정사를 겸하니 죄는 갑이 지었는데 을이 뒤집어쓰고 동편의 화를 서편이 당한다. 후사가 없는 왕은 양변에 지위를 맡기고 아들을 둔 장수는 어느 고을에 한가로이 누웠다. 만약 성년을(성조기) 만나면 백학을(비행기) 타고 서쪽으로(미국) 간다.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니다.(태평양)
푸른 옷을 입고 남쪽으로부터 오니 오랑캐도 아니고 왜놈도 아니다.(미군을 뜻한다.) 인묘년에(6,25) 남북이 전쟁을 하고 두 나라로 대치한다. 이 씨를(이승만) 붙들고 나머지는 베어 내니 나라의 틀이 갖추어진다. 남북은 하나로 통일되니 비로소 안정된다. 나라가 평정됨이 누구의 공인가? 오직 총명하고 신출한 이가 서편에서 군사를 일으키니 천자가 기뻐하고 세 이웃이 돕는다.
계룡산에 도읍을 하니 편안하고 우러러보는 세 아들이로다.

도선 국사가 1100년 전에 남긴 비기입니다. 이 글도 경복궁터에 궁궐을 세울 것을 미리 내다보고 그 터에서 앞으로 일어날 예지력 입니다. 읽을수록 놀라운 혜안에 경탄을 하게 됩니다. 글 맥의 순서로 볼 때 통일이 먼저 되고 새 도읍은 그 후에 이루어짐을 짐작케 합니다.
아마도 통일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나라에 신도읍지라는 인상을 줍니다.
의상대사와 도선국사 두 선각자의 글을 볼 때 두 분 모두 경복궁터의 암울한 미래를 지적했지만 새 도읍지의 출현을 암묵적인 표현으로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의상대사가 남긴 비록(秘錄)에서도 이상향의 국가로 갈 수 있는 왕도처를 지목했지만 도선국사의 의견과 겹치는 부분이라서 이후에 밝히겠습니다.

동서고금 세계사에서 왕도처의 산세를 보고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예는 유일하다고 생각되며 새로운 도읍지의 출현을 예시하며 평안과 희망적인 국가의 도래를 노래한 예 역시, 지구별 역사로 볼 때 처음이자 끝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이 대지위에 발 딛고 살아가는 이상 풍수를 믿든 안 믿든 관계없이 자연산천의 기운은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으로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궁궐터의 산천 조건에 따라 국운이 달라질 수 있음은 오히려 자연스런 이치라고 봅니다.
또한 허물 많은 경복궁터로 인하여 민초들이 고초를 겪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축복으로 가득 찬 왕도처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세상의 이치로 볼 때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흉지가 있으면 명지가 있고 삼라만상의 근본은 음과 양에서부터 시작하니까요.

본인이 산천에 혈이 있어 그곳을 찾아가 보는 것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어느 날 서울 용산에 대형 명당 혈이 평지에 맺혀있음을 알아내게 됩니다. 처음엔 그저 서울 한복판에 초대형 양택지가 있구나! 했는데 재삼 세심히 살펴보니 풍수지리에서 가장 존엄한 명당으로 알려진 전설 속에 천시원(天市垣) 임을 밝혀내게 됩니다. (2008년)


5 남산 下 에 세계제일의 왕도처(王都處) 천시원(天市垣)이...

본시 천시원이란 명칭은 천문학에서 쓰는 명칭으로 고대의 선철(先哲)들은 천상에는 삼원(三垣) 28수(二十八宿)의 별자리가 있어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성좌의 기운들이 지상의 산맥에 상호 유기적으로 작용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믿음은 북극성을 가장 신성시하여 이곳은 하늘의 천자가 신하들과 상시 거처하는 곳이고
**북쪽 해방(亥方)에는 자미원(紫微垣)이 있어 천자가 잠을 자는 침궁 이고
**동쪽 간방(艮方)에는 천시원(天市垣)이 있어 강(銀河水)을 끼고 있으며 하늘나라 백성들이 사는 도성 이고 하늘나라의 시장이기도 합니다.
**남쪽 손방(巽方)에는 태미원(太微垣)이 있어 천자가 정사(政事)를 돌보는 곳으로 이와 같이 천상에 삼원 (三垣)이 있음을 정하였습니다.
이 같은 천상에 상서로운 성좌들의 기운들은 지상에도 똑같이 상응하여 산맥의 구성이 각각 자미원, 천시원, 태미원이란 명당 혈로 결성된 곳이 있다고 천문지리를 연구하고 기록했던 고대의 문헌들이 수천 년 전부터 오늘날 까지 전해 오는 것입니다.
천시원은 이러한 천기(天氣)와 지기(地氣)의 상호작용에 의해 창조된 극귀(極貴)의 명당 혈로서 만리에 하나 얻기 어려운 최존(最尊)의 명당으로 신성한 성좌의 이름을 붙여 전래되어 왔습니다. 지구상 도처에는 수많은 명당 혈이 맺혀있어 부귀지지,(富貴之地) 혹은 장상지지,
(將相之地) 혹은 제왕지지(帝王之地) 같이 여러 등급으로 차등을 두어 맺혀있지만 자미원이나 천시원은 천자지지(天子之地)가 되어 명당 중에 최상의 혈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또한 천시원 같은 최존지국(最尊之局)의 명당 혈은 일개 개인이 쓸 수가 없고 한국가의 왕도처로 쓸 수 있도록 천연적으로 양택 터로 창조된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창조주 의 작품, 하늘이 내린 도읍지입니다.



<<서울 남산의 전경>>

활의 형상을 하고 있는 서울의 주산(主山) 남산의 형상입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기상은 험한 북악산과는 많은 비교가 됩니다. 산의 기상이 저래야 많이 혈을 맺을 수 있는 모체가 됩니다. 살기(殺氣)를 벗어 냈다는 뜻이지요.
양쪽에 높고 낮은 부드러운 산봉이 이어진 남산의 형상은 풍수학적으로 좌보성(左輔星) 이라 하여 오행중 토(土)에 해당됩니다.
또한 토는 오행중에 중심에 해당되어 모든 오행의 정신을 아우르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토의 정신을 품은 남산의 기상으로 천시원이 창조되었으니 이후 궁궐을 세울 경우 망국의 파당과 3류의 정쟁이 없는 정치력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여기서 나오는 국력은 머지않아 지구별의 중심국으로 존엄이 세워질 것입니다.


우리나라 풍수학계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서산 가야산자락에 자미원이 존재한다는 설이 입에서 입으로 혹은 암암리에 기록으로 전하여지고 있었지만 천시원은 그동안 구전이나 비록(秘錄)으로 전해지는 바가 아예 없었고 다만 북한 강계 지방에 천시원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내용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본인이 2008년 6월 남산을 답산 차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한강 부근에 대 혈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대 산맥이 큰 강물을 만나면 가기를 멈추고 기운이 뭉쳐 역시 큰 대 혈이 맺을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백두산의 적자(嫡子) 정기를 받은 남산 정상에서 전후를 살펴보면 남쪽으로 뚝 떨어진 용맥은 다시 은은하게 기봉(起峰)을 하여 지금의 해방촌을 이루었는데 여기서 다시 남으로 뚝 떨어져 흔적 없이 흐르다 서남방으로 방향을 틀어 나아가다 용맥은 멈추고 평지에 초대형 넓은 혈이 맺혔는데 용맥의 흐름이 승천하강 하는 비룡(飛龍)의 형세였습니다.
혈에는 이미 대형건물이(전쟁기념관) 들어서 있었고 전체를 관망하니 좌청룡은 두툼한 둔덕으로 되어 혈 앞을 휘감아 압구정 쪽에서 살(殺)이 되어 치고 들어오는 한강물을 막아주고 있었고 전면에는 관악산이 이번에는 강도산이 아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혈을 보호하고 있었으며 천록(天祿)이 되는 남산은 명 군주(明 君主)가 되고 이때 관악산은 군주를 지키는 충성스런 신하가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남산의 완만한 두 산봉은 활처럼 단정 수발한 형상을 하고 있어 좌보성(左輔星)이라 하며 이 좌보성은 오행상 토(土)에 해당되어 토는 오행의 중심이라!
이 이치는 혈에 궁궐을 세울 경우 모든 기운이 천시원의 정신에 이르게 되어 국론은 파당과 분쟁을 모르는 평화롭고 부국강병의 건강한 정신세계의 국가로 나게 되어 지구별을 아우르는 중심국가가 됨을 말없이 알리고 있었습니다. 한편
혈처와 한강물이 마주보게 되었으니 재물은 나라의 곳간에도 민초의 지갑에도 채워 넘치게 되며 아득히 김포의 계양산과 강화도의 마니산이 병풍이 되어 광활한 격국을 만들어, 이 초대형 국세는 이곳이 평범한 명당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우백호 쪽으로 남정 초등학교 근처에 동산이 있는 것을 보고 이 동산이 임금이 쓰는 옥새에 해당하는 옥인(玉印)임을 깨달아 이 명당 혈의 위상은 역량이 큰 제왕지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이 혈처에 들어오는 지기의 방향(入首)을 살펴보니 동방의 간(艮) 방향이라! 입수가 간 입수(艮 入首)였습니다.
문헌으로만 들어오던 전설 속, 천상의 동쪽에 있는 천시원 궁이 지상에 똑같이 출현한 천하 대 명당 동방의 천시원(天市垣) 이였습니다.
제왕보다 한 수 위인 천자지지였던 것입니다.
중국에도 없는 극귀(極貴)의 대 명당이지요.
중국도 고대로부터 자미원 같은 천하명당에 도읍지로 쓰길 갈망했지만 운기(運氣)와 인연이 없었는지 북경 자금성의 설계를 인위적으로 자미원성좌의 구도로 모방하여 혈도 아닌 곳에 세웠지만 허장성세에 불과 합니다.

이때 순간적으로 드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이 천시원이 왜 이 시대 지금 세상에 들어나는 걸까?
이런 극존(極尊)의 명당 혈은 사용할 시기가 되어야 세상에 들어나는 것일 텐데?
지금 이 시대가 사용할 시대가 됐단 말인가?
이 천시원을 우리의 옛 선사들도 몰랐을 리가 없을 텐데?
알면서도 숨겨놓은 건가?
왜 이 천시원에 대하여 우리 풍수역사에서 아무런 기록이 없었을까?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데 이 의문에 답을 얻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남산의 원래 이름이 목멱산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한문으로 된 자료를 찾아보니
(木覓山) 이였습니다. 나무목, 얻을멱, 뫼산으로 된 산명은 바로 천시원을 얻는 산 이였습니다.
나무木은 동쪽의 방위개념이 들어간 글자이기에 천상의 동쪽에 있는 궁, 천시원과 일치하는 것이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치는 우리의 옛 선각자 들이 천시원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겠습니다.
지명으로 숨겨놓고 때를(天時) 기다리면 자연히 세상에 들어나 사용될 것이라고 본 것 이지요.

또한 우리의 선각자들은 천상의 천시원은 앞에 은하수란 강이 흐르고 있으니 신묘하게도 용산에 있는 지상의 천시원도 앞에 대강이 흘러, 강 이름을 천상의 은하수와 같이 은하수漢자를 넣어 한강(漢江)이라 이름 지은 것입니다. 옛 지명인 한성, 한양 (漢城 漢陽) 모두 천시원과 무관치 않은 이름으로 선조들의 혜안(慧眼)이라고 봅니다.
문헌으로만 보던 천상의 성좌의 기운이 지상의 산맥과 유기적인 상호 작용의 실체가 눈으로 확인 되는 것 같아 생각할수록 천지간의 신묘한 이치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천시원은 풍수학의 물형 론으로 비룡농주형(飛龍弄珠形) 에 속합니다. 비룡이 여의주를 앞에 놓고 희롱하는 형국이란 뜻 이지요. 이 뜻도 역시 우리의 선조들은 혜안을 보이니
비룡은 용산으로 대신했고 여의주는 여의도란 지명으로 꼭꼭 숨겨놓은 것입니다.
이 모든 숨겨졌던 수수께끼의 지명들이 세상에 밝혀질 때 천시원이란 세계유일의 초대형 특급명당이 쓰여 지는 시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6 풍수지리에서 혈(穴)을 검증 한다면

우리에게 풍수지리는 어떤 의미일까요? 미신 아니면 진리?
국민청원을 올리는 저 자신이야 확고한 신념에 차 있지만 비전문가인 일반인들이야 저의 의견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풍수지리의 실체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통칭 명당이라고 불리어 지고 있는 혈(穴)의 존재 유무와 또 한 가지는 혈에서 일으키는 발음, 혹은 발복 이라고 불리어 지는 현상을 어떻게 정의를 내리는 가의 판단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 풍수는 신비의 학문이 되기도 하고 미신의 학문이 되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풍수지리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수많은 분야의 학문 중에서 신(神)의 영역을 넘나드는 유일한 학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육백년 전 무학대사나 천이백 년 전 도선국사 같은 분들이 남겨놓은 풍수지리 비록(秘錄)들은 현세에서도 가장 정확하고 신뢰할만하며 더불어 이를 능가할만한 풍수지리 유산록(遊山錄)은 없다고 봅니다.

이분들의 비록은 모두 실증(實證)하는 혈이란 존재를 중심에 두고 남긴 기록으로 오늘날 이를 토대로 전국산천에 수 없이 맺혀있는 명혈들을 찾아보면 한 치 오차 없이 빈틈없는 기록으로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이 땅의 후손이 천 년 전 선조들이 특별한 장소를 지정한곳을 찾아내어 증명했다면 그것이 곧 과학이 아닐까요?
세간에서는 풍수지리를 풍수지리설 이란 용어로 폄하 하고 있지만 이는 선조들의 위대한 유산과 업적을 무시하는 행위가 되고 스스로 무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봅니다.
이 혈처를 증명할 사례로 두 가지를 들어 봅니다.
하나는 용산에 있는 전쟁 기념관 터의 천시원혈을 들 수 있겠고,
또 하나는 예산 덕산에 있는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묘 터의 혈을 비교 검증하기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남연군묘는 아무것도 없는 빈 묘이고 남연군 체백은 앞에 있는 평 바위 앞에 평장으로 안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혈처이기 때문이지요.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남연군묘의 혈과 천시원혈의 형질과 밀도와 색상 등 여러 가지 혈토의 특성과 동질성 및 질감 등을 비교 검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미 남연군묘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명당으로 인식되어 있고 본인이 볼 때도 명당이 틀림
없습니다. 다만 현재 남연군의 봉분은 가짜로 조성한것이고 실제 혈은 봉분 앞에 있는 평지에 맺혀있어 이곳 혈에 체백이 있을 거란 예상입니다.







<<산중에 맺힌 혈과 황토밭에 맺힌 혈>>

사진과 같이 혈은 독특한 형질로 되어있어 황토, 혹은 마사토, 혹은 일반 토질하고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아름답고 참 좋은 느낌이 절로 듭니다.
풍수학을 탄생하게 한 풍수지리의 근본이며 핵심이자 풍수의 본질이지요.
저러한 반 평도 채 안 되는 혈을 후대에게 알리고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기려 도선국사, 무학대사 같은 선각자들은 삼천리강산에 몸의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으며, 조물주가 인간에게 선물할 수 있는 최고의 보물입니다.
평생 빈천한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도 부귀복록을 누릴 수 있는 운명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7 풍수지리에서 혈(穴)이란?

풍수학에서 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자연계에 혈이 존재하므로 풍수학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세간에서 믿을 수 없는 미신으로 치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인간이 활용하고 있는 모든 학문은 어떤 결과를 놓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원인과 과정을 합리적으로 설명하여 학문으로 또는 과학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풍수지리도 그와 같은 모든 과정을 충분히 갖추었는데도 불구하고 의혹의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산천의 형상이 변화무쌍하여 고도의 안력(眼力)의 수련을 필요 하는 심오한 학문이기에 풍수학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정점의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많은 혼선과 불합리한 이치가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본인은 이 부분에서 풍수학의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풍수지리의 최종 결과물인 혈(穴)에 대해서 보충설명을 하여 풍수지리에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우라나라에 산재해 있는 혈토의 형질은 대부분 황금색이거나 주황색 등 아주 밝은 색상을 띄고 있고 간혹 옥색, 연두색, 회색, 상아색 등과 같이 여러 종류의 색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혈토의 색상은 맑고 밝아 주변의 토질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며 같은 색상이라도 밝지 않고 어두운 탁한 기운이 있으면 혈이 아닙니다.
또한 혈의 질감은 밝고 화려한 색상과 함께 아주 견고하며 단단하게 뭉쳐져 있으며 그 밀도는 역량이 큰 대명당일수록 밀도가 더해져 더 강한 면모를 보입니다.
어느 혈이든 혈토에는 모래 혹은 소석(小石)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습기도 아주적어 건조하며 단단하면서도 손으로 비비면 분가루처럼 부서지는 미세한 입자로 되어있고 무엇보다도 형질이 맑고 밝아 빛이 나는 듯한 토질로 뭉쳐있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혹이나 이러한 토질도 아니고 거무튀튀 하며 습이 많고 소석과 함께 거칠고 탁한 색깔의 토질 이라면 흉지 이므로 이러한 곳의 토질에서 탁한 기운이 나오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혈도 가짜가 있고 진혈이 있어 진가를 구분하는데 세심한 공력이 필요합니다.
어찌 보면 심오하고 신묘하다 못해 평생을 공부해도 깨우치기 어렵다는 풍수지리는 아주 쉬운 학문일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산천의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하는 학문이라서 눈에 보이는 대로 결론을 내는 것이 정답이기 때문입니다.

산중에 있는 음택 혈은 대부분 사람하나 뉘일 정도의 크기이고 혹간 한 평 정도의 크기도 있기는 하나 매우 드믄 것이 특징입니다.
평지에 맺힌 양택 혈은 여러 평 에서 10~30평 내외가 가장 많고 용산에 천시원 같은 특별한 장소는 500평 이상 되는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천시원 혈은 부분 부분 옅은 황색을 띄고 있겠으나 대부분 회백색 혹은 유백색의 밝은 색상으로 미세하며 단단한 토질로 결성 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8 혈에서 발생하는 특별한 파동에너지

우리의 선조들이 천년이 넘는 유구한 세월에 풍수지리가 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온 연유는 오늘날의 과학적인 것 보다는 경험에서 얻은 체험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오남용으로 인하여 폐해가 있을지라도 말이지요.
본인이 그동안 경험에 의하면 혈에서는 고유한 파장의 에너지가 온기(溫氣)와 함께 발생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마도 원적외선과 같은 에너지의 일종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그렇지만 풍수일선에서 사용하는 엘로드,혹은 추, 혹은 관룡자로 감지되는 지기와는 전혀 다른 파동의 에너지라고 판단됩니다.
이와 같이 자연계에는 일반적인 대지에서 감지할 수 없는 기운이 혈이라는 특별한 처소에는 인간의 몸과 마음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에너지가 발생하는 비밀스러운 신비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한편 혈에서 방출하는 에너지를 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기(氣)수련자, 고도의 정신수련자, 혹은 선천적으로 혈 기운을 몸으로 느끼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분들한테는 전쟁기념관에 방문하면 좋은 경험이 되겠습니다.
또 드물지만 몸에 질병이 있어 극히 예민한 사람일 경우 질병으로 인한 은근한 고통이 상당히 완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도 전쟁기념관 건물 내에서 오랜 시간 관람차 돌아다녀도 다리에 피곤함을 모르고 활력이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풍수에 종사하는 분들 중에 추, 엘로드, 관룡자 등 기구를 다룰 줄 아는 분들도 전쟁기념관에 오시면 기구가 혈 기운에 의해 힘차게 반응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겠습니다.
풍수지리를 일반적인 입장에서 보면 추상적이고 현실감 없는 비합리적 학문으로 치부되는데 이는 오롯이 풍수지리에 직간접으로 종사하는 풍수인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상기와 같이 분명 이 산천에는 체계적인 법칙과 질서가 있어 혈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공개적인 상황에서 풍수지리의 실체를 증명할 수 없었던 환경이 그 이유 중에 하나라고 봅니다.


9 천시원 터에 궁궐이 세워지면

그렇다면 천시원 혈 터에 마침내 궁궐이 세워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현재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방위를 맞춰 세우게 되면 건물 내에는 상서로운 영기(靈氣)가 서리기 시작합니다. 이때 건물의 방위를 맞추는 의미는 하늘의 천기(天氣)를 빨아들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반드시 맞춰야할 관문입니다. 안테나와 같은 이치이지요.
현재 전쟁기념관은 방향이 맞지 않아 혈에서 방출하는 에너지만 있지 천기는 와 닿질 않아 울림이 없습니다. 건물의 방향을 맞춰 세우게 되면 지기(地氣)와 천기(天氣)가 상호 호응하여 드디어 울림이 일기 시작합니다.
이곳에서 국정을 돌보는 모든 사람들 신체는 상서로운 기운에 흠뻑 노출되어 바른 생각 건강한 정신으로 국정에 임하니 민초들은 오천년 만에 처음 맞이하는 공정하고 평화로우며 정의로운 신세계 속에서 춤과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이 파동은 대한민국을 넘어 지구별 전체에 울림을 주게 됩니다.
우리의 국력이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뜻입니다.

이때 서울의 주산인 남산은 그 형상이 오행중 중앙에 해당하는 토(土)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우리는 세계의 중심국 세계의 부모국으로 바뀌게 되며 이제까지 순환하는 우주의 기운은 서양에 머물렀으나 이때부터 동양, 우리 대한민국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자연적으로 천여 년 동안 이어져왔던 한 많은 약소국의 위치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반듯이 찾아오게 됩니다. 국경선이 바뀐다는 뜻이지요. 또한 천시원 터에 궁궐을 세우기로 국민적 합의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긍정의 에너지가 울림이 일기 시작 합니다
왜냐하면 혈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꼭 같은 이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天과 地의 신령스런 상서로운 기운이 인간이 마음을 내는 뜻에 상응하기 때문이지요.
나를 알아주는 자에게 친절을 보이고 싶은 이치와 같습니다.
이와 함께 나라에 간신은 설 땅을 잃게 되고 통일은 한민족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년 내에 이루어져 우리의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통일이 되어 남쪽과 북쪽의 생활 방식이 달라 이질감으로 국론 분열이 있을듯하지만 예전과 같은 불의의 정치 는 없을 것이며 상생의 정치와 강하고 잘사는 나라 공정하고 정의로운 개혁이 필요 없는 건강한 나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천시원 터에 궁궐을 세우는 뜻은 하늘을 내편으로 만드는 일과 같습니다.


10 지구별 에는 이미 혈 위에 궁궐을 세워 부강한 국가가 된 예가 있다.

혈 위에 궁궐을 세운다고 이러한 이상향에 가까운 나라가 과연 실제 이루어질까요?
그런데 우리보다 한발 앞서 혈 위에 궁궐을 세우고 부강한 국가가 된 사례가 실제 있어 소개 합니다.

1800년 혈 위에 궁궐을 세우고 3년 만에 국토가 두 배로 늘고 45년 만에 국토의 3배로 늘어나고 67년 만에 원래 갖고 있던 국토의 3.5배로 늘어나 지금은 지구상 초강대국이 된 나라 바로 미국입니다. 혈 위에 궁궐을 세운 지구별의 유일한 나라입니다.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하늘은 정말 미국편에 서 있었습니다.
본인은 미국의 사례를 보고 지구별의 숙명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이 풍수학이 없었으나 전통적으로 땅의 지기를 가려내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다우징롯드 라고 하는 기구로 수맥과 지기를 가려내는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우리의 풍수지리와 맥을 같이 하는 기능입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지금 워싱턴D.C 의 도시설계 총책임자로 있으면서 설계의 실무책임자 지근거리에 분명 땅의 지기를 가려내는 능력자의 도움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백악관 터와 국회 의사당 터가 모두 혈 위에 세워진 것이 그 증거이며 이유입니다.
우리의 전쟁기념관처럼 우연히 혈 위에 건물을 세울 수도 있었겠지만 미국의 국가 최고기관 두 곳이 정확히 혈에 안착했다는 사례는 우연으로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워싱턴 명당 혈의 형국은 초대형 상제봉조(上帝奉朝)형 인데 제왕지지란 뜻이지요.
풍수에서 제왕지지의 완성은 지근거리에 옥새에 해당하는 바위로 된 동산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데 백악관에서 멀지않은 곳 얕은 동산위에 우뚝 세워진 워싱턴 기념탑이 임금이 쓰는 옥새의 손잡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뜻은 지구별에 제왕적 위상의 국가로 난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우연의 끝판 왕 이였습니다. 이 현장을 바라보면서 지구별에 미국의 등장은 숙명 이였구나!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지금 국제정세는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고 있지만 중국은 결코 미국을 넘을 수 없습니다.
북경 터와 백악관 터의 부딪침인데 경제전쟁을 하던 승부는 이미 나 있습니다. 이유는 하늘은 미국편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미국을 넘고 싶으면 자미원을 찾아 천도를 하든가 백악관을 이사 시키든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치만,
이미 순환하는 우주의 기운은 동양의 우리 대한민국, 천시원에 와 닿아 있습니다.
미국의 상제봉조형 혈과 우리의 천시원혈을 비교할 때 한국의 천시원이 역동성에서 월등히 앞서 있습니다. 또 혈에서 방출하는 에너지의 세기도 우월합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도 합니다.
또 근래에 이르러 미국의 세기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11 세계의 중심국으로 발돋음할 통일 대한민국!
전설속의 계룡 도읍지가 용산의 천시원(天市垣) 이다.

미국의 백악관 터는 우연히 등장하여 후에 잘 다듬어서 선택된 혈처라고 볼 때 우리의 천시원 터는 선조들이 일천 수백 년 전부터 점지한 하늘이 내린 터로서 반드시 사용해야하는 책임과 의무가 동반된 존엄한 터라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또한 백악관 앞을 흐르는 포토맥 강은 용산 앞을 흐르는 한강보다 물의 양이 훨씬 적습니다.
이 뜻은 풍수에서 물은 곧 재물이라! 미국보다 더 부국이 될 수 있단 뜻입니다. 이때 남산은 간방(艮方)에 있어 천록(天祿)이 되니 천시원 터는 창조주가 우리 대한민국 국민에게 내리는 최고의 보물인가 합니다.
천시원 터의 발복은 천년을 이어갑니다.
다만 이 터를 사용할 시기가 지금 이 시대라는 것이 가슴 뛰는 일이고 설레이기도 하지만 천시원 터를 사용하여 지구별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면 그에 의한 책무도 따를 것이라 봅니다.

또한 이 천시원 터는 천년이 넘는 오랜 세월, 우리 민중 속에서 입에서 입으로, 혹은 참서로, 혹은 비기로 전래되어오던 계룡 도읍지가 실제로 이곳임을 밝힙니다.
공주 계룡산 자락이 아니었습니다.
옛 선각자 들은 이곳을 때가(天時) 아니면 쓰지 못하도록 고이고이 숨겨 놓았던 것입니다.
이곳이 계룡 도읍지임을 밝히는 증거는 차고 넘치지만 국민청원에 올리는 것이 옳은지와 그 양이 많아 주저되어 2020년 2월에 출간한 졸저 “계룡도읍지 천시원”으로 대신합니다.
저의 졸저에 실린 내용 중 주목할 만한 여러 내용이 있지만 그중 두 구절 올립니다.
하나는 우리나라 현대사를 다룬 내용 중 분열과 통일을 예시한 내용인데 새 청와대를 세울 천시원 터와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어 전체 사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올립니다.

격암유록 말운론 편

一國分列何年時 三鳥次鳴 靑鷄之年也
일국분열하년시 삼조차명 청계지년야

又分何之年 虎兎相爭 水火相交時也
우분하지년 호토상쟁 수화상교시야

停戰何時 龍蛇相論 黃羊用事之月
정전하시 용사상론 황양용사지월

統合之年何時 龍蛇赤狗喜月也
통합지년하시 용사적구희월야

白衣民族生之年 猪狗分爭心一通
백의민족생지년 저구분쟁심일통

<<해설>>
나라가 분열하는 때는 어느 때인가? 세 마리 닭이 우는 중에 청계지년(을유년) 이라.(1945년)
광복절을 의미한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남북으로 갈라지게 된다.

또 다시 어느 해에 분열 되는가? 호토(虎兎)는 인묘(寅卯)년이다. 경인년과 신묘년을 의미 하는데 1950년 6.25 전쟁을 말한다. 수화(水火)는 북과 남이며 6.25이후 다시 분열한다.

남북이 교전 중 어느 때 정전하나? 용사(龍蛇)는 진사 년으로 임진 계사년(1953년)을 말하며 황양(黃羊)은 기미(己未)로서 7월을 의미하니 1953년 7월에 정전협정을 한다는 뜻이다.

통일은 어느 해에 하는가? 용사적구(龍蛇赤狗)는 진사(辰巳) 년 병술(丙戌) 월을 말한다. 진사는 갑진 을사년 이며 2024년 과 2025년 9월에 통일이 되며 이때 백의민족이 다시 살아나는 해이고 돼지(남한)와 개(북한)가 대치하다 마음이 하나가 된다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글은 500년 전 남사고 선생이 남긴 격암유록 말운론 편에 있는 글 중 일부입니다.
통일은 언제 하는가의 문단을 제외한다면 최근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 교과서를 보는 착각이 들 정도로 놀라운 예지력을 보인 글입니다.
이 글대로라면 통일이 눈앞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앞서 도선비기에 통일을 먼저 이루고 계룡도읍은 후에 세운다는 글과 잘 매치가 돼서 선정해 보았습니다. 통일과 청와대 이전이 같은 동시대에 진행된다는 것을 보면 우리 대한민국에 시운(時運)이 와 닿고 있구나! 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용산에 미군부대는 시기에 맞춰 알아서 평택으로 떠나 이곳을 이미 비웠으니 이것이 하늘의 뜻이 아닐까요?

또 한 구절은 청와대의 이전 시기를 2020년에 시작하여 2031년에 완성한다고 밝힌 참으로 놀랍고 믿기 힘든 예시의 글입니다. 여기에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를 절대로 놓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한 점입니다.
역시 격암유록 갑을가 에 수록된 글입니다.
아마도 철학에서 말하는 선천시대가 끝나고 후천시대로 막 들어선 지금 새 시대에 지구별을 선도하는 국가로 갈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글로 보입니다.
2020년 청와대 이전을 위해 공식적으로 국가가 나서서 선언 했으니 청와대 이전을 위한 원년이 되었습니다. 세종시는 혈 자체도 없을뿐더러 작은 고을을 아우를 정도의 풍수적 역량으로 지구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천시원 터의 역량과는 많은 격차로 인하여 풍수적 소개를 생략 하였습니다.

우리역사에서 천도의 의미는 항상 새로운 국가탄생을 의미 했습니다.
서라벌은 신라를 탄생 시켰고 송악은 고려를 낳았으며 한양은 조선을 키웠습니다.
현재에 이르러 청와대를 새로운 터전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은 분명 새로운 국가 탄생을 예고하는 상서로운 천운(天運)의 징조입니다.
새로운 국가 탄생은 멀지않은 때 새로 창업할 위대한 통일 대한민국! 그것입니다.

천도(遷都)는 천도(天都)로 하여야...
2021년 2월 6일
智山 *** (牟成學) 올림
청원답변 265호「고속철도 통합 및 노선 확대 요구」
안녕하십니까? 국토교통부 제2차관 황성규 입니다.

오늘은 고속철도 통합과 KTX 운행 노선 확대를 요청하신 국민청원에 대해 답변 드리고자 합니다. 이 청원에는 20만4,400여 명의 국민께서 동의해 주셨습니다.

답변에 앞서 정부는 기본적인 공공 교통수단인 철도 서비스를 국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철도 공공성 강화를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먼저, 철도 건설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여 강릉선·동해선 개통, 서해선 연장과 호남고속 2단계 추진 등 더 넓은 지역에서 더 많은 국민이 철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철도망을 구축해 나가고 있으며, 교통여건이 열악한 벽지노선은 비록 수익성이 낮다 해도 정부지원제도를 통해 소외지역주민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등 공공교통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철도요금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철도요금 수준을 최대한 저렴하게 유지하면서 다자녀 할인 등 다양한 할인제도를 도입하고, 노인·장애인을 위한 예·발매 시스템 등 취약계층을 위한 편의 서비스를 확충하고 있습니다.

안전한 철도 이용을 위해 스크린 도어 등 안전설비 확충, 철도역사와 객차 내CCTV 설치 의무화 등 안전 확보를 위한 집중적인 노력으로 최근 3년 동안 사고 건수도 과거보다 45% 수준으로 감소하였습니다.

정부는 앞으로도 철도 공공성 강화를 기본방향으로 하여 철도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계획입니다.

청원인께서 요청하신 코레일과 SR의 통합에 대해 답변드립니다.

청원인 말씀처럼 코레일과 SR의 분리로 인한 중복 비용의 지출과 SR이 코레일에 차량정비 등을 의존하는 불균형한 경쟁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해 통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반면, 코레일과 SR의 경쟁으로 인한KTX 마일리지 도입 등 요금 인하와 열차 서비스 질 제고, 운영사의 비용 감축 노력을 통한 부채 문제 해결과 국민 부담 경감 등 경쟁체제가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철도통합 등 철도산업 구조 문제는 국민 모두의 이해관계가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다양한 견해가 있는 만큼 정부는 신중한 의사결정을 위해 “제4차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코레일-SR 통합 여부 등 구조평가를 포함해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검토 과정에서 전문가 뿐 아니라 이해당사자 의견도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특히, 검토 결과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 코레일과 SR의 노사, 전문가, 이용자 대표 등으로 구성된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하여 검토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금년 말까지 위원회를 통한 지속적인 논의와 의견수렴을 거쳐 검토를 완료한다는 목표로 추진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코레일과 SR 통합 여부가 철도산업 발전과 국민 편의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필요하다면 보다 다양한 논의와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청원에서 요청하신 고속철도 운행노선 확대 등도 국민 편의를 최우선으로 하여 지속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고속철도 운행노선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차량 확보가 필수적이며 선로용량은 충분한지, 안전상의 문제는 없는지 등의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므로, 보다 많은 국민이 편리하게 철도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지속 강구해 나가고, 부족한 철도차량과 선로용량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 등도 수립하여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청원인께서 요청하신 사항 이외에도,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철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지역차별 해소와 소외지역, 소외계층에 대한 서비스 확대, 이용불편 해소와 요금 부담 완화 등 철도의 공공성을 한층 더 강화하고, 국민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국민 여러분이 원하는 철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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