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오늘 하루 열지 않음
저는 유흥업소에서 밤에 일하고있는 힘없는 아가씨입니다 > 대한민국 청와대
컨텐츠바로가기

대한민국 청와대

국민청원
국민청원 4년, 국민이 세상을 바꿔 온 국민청원입니다

청원종료

저는 유흥업소에서 밤에 일하고있는 힘없는 아가씨입니다

참여인원 : [ 26명 ]

  • 카테고리

    기타
  • 청원시작

    2019-02-25
  • 청원마감

    2019-03-27
  • 청원인

    naver - ***
  1. 청원시작

  2. 청원진행중

  3. 현재 상태

    청원종료

  4. 답변완료

청원내용

저는 밤에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힘없는 29살 여자입니다
제가 어디에도말할수없고 도움을청할수있는곳이 없어서 이렇게나마 글을남깁니다
저는 철없던 10대시절을 정말 그어떤돌을던지시더라도 그모든돌을맞아 마땅할정도로 철없이 겁따위는없이 모든게 제위주로돌아가는세상인줄 착각하고 지냈습니다 그로하여 18살때는 소년원도다녀왔구요 그땐몰랐습니다 제가 사고치며 방황할때마다 어른들이그러시더라구요 부모욕먹이는거라고 전 그시절 그게무슨뜻인지도몰랐구요 근데 이젠압니다 그말이 무슨뜻인지 저는 소년원을다녀오기전에 아버지가돌아가셨습니다 위암으로요 그렇게 병원에서 짧고도긴스스로의싸움을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사실 그땐 그렇게 슬프지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전 아버지의혼육방식이 너무나도싫었기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보다어렸을때는 아빠가제일좋았고 항상아빠옆에붙어있었습니다 그렇게시간이흘러 중학교들어가고부터점점 스스로방황하기시작하였습니다 너무나 즐거웠고 보수적이셨던아버지 떄문에 외박은꿈도못꾸었구요 그래서 가출도일삼고 사고도많이쳤습니다 밖에서 그때친구들과 생활하며 돈이떨어져서 돈을뺏기도했고요 그돈을가지고 생활하고 잡혀서집에들어가고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중학교2학년수학여행을 다녀와서 제방에 들어갔는데 여기저기 강도가든것처럼 어지럽혀있었습니다 저는그게무얼뜻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퇴근하시고 저는 8시간을꼬박 회초리가 몇개가부셔졌는지도 모르게맞았습니다
그이유는 아버지의 금고에 손을대어서였습니다 그치만 그것은 제가 한일이아니었습니다 저는 오빠와 남동생 3남매입니다 그중 저는 제남동생과 가장가까웠구요 제가정말사랑하는동생이었습니다 그치만 맞으면서 알게되었습니다 제가왜맞고있는지를 제동생이 용돈이부족해 손을댔더라구요 그치만 제동생이 맞는것보단 그냥 제가 맞는게 참는게 낫다고 생각하여 그렇게8시간을맞고 잠들었습니다 학교를가려고일어나는데 온몸이 아프더군요 그리고 얼굴에는 피딱지가 곳곳에있었고 온몸에는 생전처음생겨본 피멍들이 있더군요 침대에서 내려오는것조차힘들었습니다 근데 그때는 하복은아니더라도 스타킹까지는 신지않을날씨였습니다 다리와팔 보이는곳의멍을 감추기위해 검은색스타킹을신은채 학교를 가야했습니다 서러웠습니다 난생처음 그것도 아버지에게 세상그어떤사람들보다 제일싫었습니다 저에겐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그떄부턴 보란듯이 더욱더 엄마아버지를 아프게했구요 최대한 아프게상처를줄방법을 생각하며 사고치고사고치고반복했습니다 그러고돌아가실때마저도 눈물은나오지않더라구요 병원에서 암투병하실땢차 찾아가지않았습니다 돌아가시기전에 가족분들모두모이셔야할것같다고하실때 그때한번찾아갔습니다 그때 손한번잡아드렸지요 웃으시더군요 근데 아무감정이생기지않았습니다 슬픔도 기쁨도 절망도 후회도 그저 빨리 친구들을보러가고싶단셍각외에는 그냥 누워계신아저씨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지나고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집에서 자다가 전화를받고 투벅투벅 장례식장을갔습니다 가서도 가족들만쉴수있는방에서 잠만잤구요 친척어르신들이 욕하는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신경쓰지않았습니다 엄마의슬픔도 이해할수없었을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저에겐 엄마만 있으면 된다고생각했으니깐요 그렇게 시간이흘러 같은해에 소년원을가게되었지요 안양이었습니다 안양에서 저희집까지는 차타고3시간좀안걸리는거리입니다 왕복6시간이지요 소년원에 들어가게된첫날 하루종일 그냥 눈물만나더라구요 그렇게 맞았을때도 흘리지않던양의 눈물을요 얼마나울었는지도모르겠습니다 이유또한 잘모르겠더군요 그냥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떄처음 엄마가 너무너무보고싶었습니다 집에가고싶더군요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6개월이지났습니다 저희엄마는 너무일찍남편을 잃으셨습니다 간병도하시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많이 야위셨구요 그때 제동생나이16살 오빠 20살 그렇게 저녁에 호프집을 차리셨습니다 보통 초저녁에 오픈해서 새벽까지 손님이끊길때까지 장사를하셨죠 그렇게 오빠등록금 동생 뒷바라지해오시면서 그리고 제가소년원에있을때 정말 하루도안거르시고 매일 면회를오셨습니다 너무가슴이아프더군요 정말정말요 너무아팠습니다 왕복으로6시간이나되는거리를 쪽잠주무시고 가게에나가서 장사를하시고 새벽에 출발해서 가장일찍도착하셔서 기다리셨다가 그얼마안되는 면회시간에 얼굴한번보시겠다고 맛있는거 먹여주시겠다고 매일같이 오셨습니다 나중에 알게된얘기로는 정말 상상도못할큰사고도날뻔한적이셀수도없었다구요 저는 제잘못된 어린시절행동으로 엄마를 잃을뻔했습니다 그렇게 사회에 다시나오게되었습니다 그러고선 생각이많이달라지더군요 전 복학대신 일을선택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밤일을 한것을아닙니다 정말열심히벌었구요 제스스로 돈을벌어보니 쉽지가않더라구요 그리고 부모님의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수있겠더라구요 정말 존경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돈벌기힘든데 본인들의 집도장만하셨고 그러므로 저희는 정말 그걸당연시여기며 편안하게 지내왔습니다 그렇게 돈을벌며 아동복 오프라인매장을 운영하게되었습니다 26살때까지만요 그떄까지 정말열심히 벌었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제나이에 가지기힘든 제앞으로된 아파트도장만했고 차도있고 돈도부족하지않을만큼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꿈도생겼구요 그꿈을위해 더열심히살았습니다 아동복은 주말이가장바쁨니다 어린이집이쉬고 엄마들이아이들과 밖을나올수있는 날은 유일하게주말이었구요 그렇게 친구들은 회사에다니며 주말에모여서놀때 전 주말에일을하였습니다 가게문이닫혀있으면안된다는 생각을가지고있었기에 20대초반엔 가까운여행은물론 해외여행한번을 가지못한채 20대초반가장즐거은추억이없이지내왔더군요 그렇게 자연스레 가장이되었습니다 오빠는 군대를다녀와 대학을다니고있었구요 동생도성인이되고나서 군대를다녀와 독일계회사에 입사를하여 또래친구들보다는 많은연봉을받으며 나름 평탄하게잘지내왔습니다 그당시에도역시저는 이세상에서 남동생과 가장가까운사이었고 서로의지를많이하였습니다 저희오빠는 독신주의에개인주의성향이강했습니다 대화법도달랐구요 어렸을때부터 이상하게 저와 남동생과는 잘어울리지못하였습니다 주의에선 오빠가있었다는것조차도 모르게말이죠 그러던어느날 제 남동생이 자살을하였습니다 제동생을죽음으로가게끔한 그가족들정말 원망스러웠죠 그렇게저는 소중한동생을 하루아침에 잃었습니다 그뒤로 저는 제가혼자사는집에서 3개월이넘는시간동안에 모든음식을거부하고 물조차마시지않은채로 반시체처럼 하루하루울며지내왔습니다 그렇게 볼품없이말라갔고요 어느순간부터는 잠도오질않더군요 가장힘들었던건 잠을자지못하는거였습니다 근데문득어느날 저에겐소중한 한사람 엄마가 걱정이되더라구요 저희가족은그렇게 마음이다쳤습니다 마음이다치니 몸마저망가져버리더라구요 그러다보니 엄마도 많이 아파하시는게보였습니다 그때서야 밖으로나가니 현실이더군요 제가 제슬픔따위에 혼자 스스로를가둔시간에 제가게는물론 월세조차내지못하였으니 그리고 직원들 월급또한주지못했고 모든게 빚이되어서 반겨주더군요 그모든걸해결해나가다보니 이젠정말 제가 저희집 가장이되야했습니다 저희오빠는 부모는부모 나는나 본인의인생을더중요시하는성향이구요 물론 지금도 오빠를만나게되면 입에담질못할욕도많이합니다 저는 이해할수없는 사고방식이거든요 그렇다고 오빠를 욕보이겠단말은아닙니다 여기까지 제살아온과거의삶이었구요 그뒤로 가장빨리빚을갚고 엄마를돌보며 제생계를유지해나갈방법은 유흥없소밖에 생각이나질않더군요 쉽게벌수있는돈이라생각했습니다 그날로저는 바로 서울강남으로 오게되었구요 인터넷을통해 어느한가게로들어가 일을시작하였습니다 제가생각했던것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쉽게돈을번다고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절대쉬운일이아니더군요 억지스럽게 마음을팔고 웃을을팔아 버는돈 처음엔 허무했습니다 제가말했듯이 저는잠을자지못합니다 처음엔 불면증으로만생각해 졸피댐이라는약을 복용해왔는데 어느순간부터 술먹는직업이다보니 이상해지는것을느꼈습니다 제스스로 정신의학과만큼은 가고싶지않았지만 찾아갔습니다 제가잠을자지못하는이유를 설명하려면 제가겪었던그때그슬픔을 다시한번 꺼내야한다는것이 제일두려웠거든요 그치만 했습니다 정말어렵게 펑펑울었습니다 병원에서 그러더군요 정신적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나서 발생하는 심리적반응입니다 정신적 외상은 충격적이거나 두려운사건을당하거나목격하는것을 말한다고합니다 제가그런상태였더군요 단계가있다면 가장높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그뒤로는 신경안정제를 먹어야만 겨우잘수있게되었습니다 약을먹지않으면 일주일도 이주도 버틸수있습니다 다만 멍항상태로 눈은뜨겁게충혈이되고 말도어눌해지고 그치만 못자는그시간을 저는 제스스로가알기때문에 그상태를악용하여 여러일을하며 최대한많이빨리벌고싶었습니다 벗어나고싶었으니깐요 밤일에서 지금현재까지 800일이조금안되게 일은하고있습니다 제가이글을쓰는이유는요 이일을하면서 친해지게된 동생이있습니다 그동생은현재 부산에서 일을하고있구요 어느날 동생이 서울에 일이있어 오게되었다가 저희집에서 하루같이잠을잤습니다 오랜만에만나반갑기도하였구요 어느순간부터는 저보다어린친구들이 마냥이쁘고 좋더라구요 남동생을생각하는걸수도있구요 그렇게 대화를하면서 부산에서일은잘하고있느냐고물었는데 본인에겐부산이 잘맞다고하더라구요 저는호기심이많습니다 하고싶은일도많구요 항상 머릿속에 물음표를달고사는것처럼요 그래서 지금은 공인중개사 자격증도같이 공부하면서 일을하고있습니다 저는 가장이기에 가족을대신해 돈을벌어 행복하게해주고싶은마음밖에는없습니다 그렇게 동생이부산으로다시가게되는날 같이가보자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놀러가는겸 동생을만나 기쁜것도있었고해서 같이 기차를타고 수다를떨며 부산에도착하였습니다 그렇게 부산에서 하루일을하게되었구요 그때하루일했던것이 지금 문제가되었습니다 그날 어느한가게에서 일을하다가 일이빨리끊기게되어서 담당실장님이 바로옆가게로 데려다주셨습니다 그곳에서 부산소방총감,소방대장 이라하시는 두분이 손님으로오셨구요 그렇게 2시간이조금안되게 룸안에서 다른아가씨와 함께 총4명이 있었던거죠 저와 제파트너(손님) 둘이 이야기를주고받았습니다 물론 조금의 스킨쉽은 오고갔습니다 저는 오늘부산을왔고 부산에선 처음일을한다고하였습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길 나누면서 나름 분위기좋게 즐겁게해줬다고 생각했구요 그러다 돈예기가나왔고 손님이 제게 신용카드한장을주셨습니다 한도가 얼마나남았는지는 잘모르겠다하시면서요 그러고 체크카드한장도받았습니다 신용카드로 사고싶은거사고 한도가다되거나 안될경우에는 체크카드에도 어느정도돈이있으니 이것으로 대처하란말도하셨구요 저는일을할때술을많이마시지않습니다 저는술도잘못먹구요 그치만 그날 부산에서 하루 일을한것이기때문에 정확히 기억합니다 정확히그분의 직업도 기억하구요 그리고 그손님 핸드폰엔 제번호도 저장되어있구요 그렇게 손님들은돌아가시고 저도 동생집으로 퇴근을하였습니다 저도물론피곤했기때문에 한숨자고일어나서 그동생과함께 서면롯데백화점을가였습니다 시간은 점심은한참넘었을때구요 그시간이면 공무원이라면 일을하고있을시간이겠죠 그리고 요즘나이많이드신 어르신들도 카드가긁히면 문자가옵니다 물론열외도있지도 그치만 대부분 카드사용알림을받는걸로알고있습니다 저는동생에게 왜전화가안올까 카드를사용했는데? 아직못봤나싶어 어쨌든 사고싶은걸샀습니다 제가 이렇게 행동한이유는 서울에서 일하면서 저도처음엔 놀랐습니다 용돈을받고 신용카드를받으며 아무렇지않게 사용하는다른아가씨들을보면서요 근데 저또한 손님들에게 용돈을받고 밖에서 만나 오로지 식사한번하는데만해도 최소50만원에서1~2백만원들을주시더라구요 그들에겐 그게아무렇지않은거였습니다 저는처음에 대체어떤사람들이길래 이런돈을 이렇게 아무렇지않게쓰나 이상하게생각할정도였으니깐요 근데사람은 간사하게도 금방잃어버리죠 그렇게 저는 똑같이 물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일을하면서 용돈도받고 더많이받고싶고 그래야 집에더많은걸해드릴수있고 그래서 아무렇지않게 부산에서또한 카드를사용했던거구요 그렇게 사용하고 서울가기전에만나 돌려주고 밥이나 카페나 어찌됫건만나야돌려드릴수있는거니깐요 근데 동생집에돌아와서 계속연락을 기다렸습니다 2시간넘는가량 밖에서 돌아다녔구요 집에와선밥도먹구 점점 저녁이되어가고 서울가야할시간이다가오고있었습니다 여전히연락은없구요 저는그분번호를모릅니다 그분핸드폰에저장되어있을뿐 다음날연락주신다고하셔서 저는 연락주시겠지하고 계속기다렸구요 끝까지연락이오질않아서 어쩔수없이 손님카드를들고 서울에왔습니다 계속가지고있었구요 카드를 거의한달가까이 가지고있었습니다 아무런연락이없길래 솔직히까먹었습니다 잊고지냈구요 똑같은일상을보내고있었습니다 그러던어느날 부산에사는동생에게 연락이오더군요 형사들이 집에찾아와서 잡아가려했다고 그리고 절당장부르라했다고 깜짝놀랐습니다 그리곤 형사님과통화가됬구요 그러고 2월21일 부산진경찰서강력5팀에서 조사를받았습니다 그날아침까지 저는일을하고 기차시간에맞춰 첫차를타고 갔습니다 시간이 딱밪더라구요 9시까지오라하셨기때문에 그날있었던 일때문에 이글을쓰게되었습니다 저는 피의자신분으로 조사를받았구요 손님이 신고하셨더라구요 지갑을잃어버렸는데 누가주워서 사용한것같다고 그렇게 조사를하다보니 제가나온거죠 그래서 형사님께서 카드어디서났냐고 하셔서 사실데로 일하다가 손님으로만나서 받았다하니 그제서야 손님이 룸에갔다고 사실데로말하시더군요 그부분에대해서는 형사님께죄송하다하더군요 그분 일행분도 같이있고 공인이고 그부분까지말해야겠나싶어서 안했다고하더라구요 근데 제가 룸에서 손님으로만나 카드를받았고 사용하게된부분이다라고하니 그제서야 제가 지갑을훔쳐서 카드를 사용했다말을바꾸시더라구요 저는 그자리에서 그냥 아무생각도들지않았습니다 형사님이저에게질문을 하시더라구요 그럼계산은 누가했느냐고 그래서 저는모른다 아무도계산하는것을보지못했다 그냥 룸에서나와 가시는것까지배웅해드렸고 그손님은 단골집이라말씀하셨다 그래서 당연히 외상을하지않았겠느냐 이건제생각이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러더니 그러시더군요 상식적으로 말이되느냐고 술값조차낼돈이 없는사람이 카드를주느냐고 그리고 술값을안내고먹는게 이해가 가느냐고 그래서 제가그랬죠 술값조차없는사람이라고말씀하시는건 잘못된것같다 술값도 안낸사람이라고말씀해달라구요 그리고 저는 단골집에서 술을드시고 나중에계산하는분들 많이 보았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나중에하신다 라고말씀드렸구요 그리고나서 형사님이 손님에게 똑같은질문을 하더라구요 손님은 정확히 그곳을술값을내지않고 마실수있는곳이다 단골이라서요 라고 말씀하시니 형사님은 그렇구나 이런표정이더라구요 그때정느꼈습니다 아 역시팔은안으로굽는구나 제가 조사받기전에 할말이있냐물으셨을때 말씀드렸습니다 저 밤에일하는업소여성맞다구요 근데 그래서 혹시나 색안경끼고 조사하지말아달라고 하였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전이미 그냥 범죄자가되어야했습니다 어차피 분들에게는 그냥 저는 백프로 제가 카드를훔쳐간 술집여자로밖에 안보였던거죠 점점언성이옾아지시면서 그분의 말투또한점점 제가슴에 박히더군요 정말억울하고눈물이터질것같았지만 우리나라는 술먹고생각안난다하면 끝인것같습니다 왜냐구요 그손님은 제얼굴을보시더니 처음보는 여자라고하였습니다 근데 그날 정확히제가훔쳐갔다고하시구요 대체얼굴도기억못하는사람이 확신을 하고 제가 훔쳐갔다고하시는걸보면서 전정말 억울하더군요 근데 그분이 솔직히 생각이안난다 물론 당연시받아 맘데로사용한 제잘못도있습니다 그래서 술김에 그런것같아 생각이안난다 실수였던것같다하시면 어느정도는 제가 현금으로 돌려드릴생각도 했었습니다 그치만 그분은 어이없게도 형사님에게 이런말을하시더라구요 자녀분이오늘 졸업식이시라고 그래서빨리가야된다고 언제쯤끝나냐구요 그때 난생처음 드라마에서만 보던 진짜 진짜 현실이란게이런거구나 제눈과피부로와닿게해주셨습니다 전 그날 생일이었습니다 두분께 생일이라고 말씀드리지도않았구요 생일선물로받은케익 경찰서 근처에 빵집이있으면 가프트로받은케익사다르릴까 라고생각했던 그것조차 제마음이 너무 후회되고 역겨워지더라구요 그때부턴 아이건 나혼자감당할수있는게아니구나 하고생각하고있었습니다 물론 손님과 저와의 말을 완전히달랐기때문에 거질말탐지를해야한다고하더군요 저는 물론동의했습니다 그분도 동의하셨구요 마지막으로 물으시더라구요 마지막으로 할말이있느냐고 그래서저는 할말이있다하면 믿어주시겠습니까 차피팔은안으로굽는거같네요 그래서저는 더이상할말이없습니다 라고했습니다 그러고 피해자라하시는 그손님은 급하게자릴비우시려고하셔서 제가 번호를여쭈어봤습니다 저는 대화할수있는시간이라도있을줄알았는데 자녀분졸업식이시라면서 명함한장주시고 급하게가시더라구요 저는 그자리에 서서 정말한참있었습니다 일층으로내려와서도 밖을나와서도 그렇게 기차를타고 집으로가는동안 여러생각을하였습니다 가는내내울었구요 아니 그냥 나오더군요 눈물이 그리고 분노도 정말 느누구에게도 말할수없는 수치심을겪었습니다 저혼자는 감당하기힘듬니다 저는 힘이없습니다 저희 큰아버지도 소방서에오래근무하시다 퇴직하셨습니다 제가 감히 어떻게 직업도뻔히알고 어느위치에있는사람인지도 잘아는데 그리고 룸에서 원피스얇으거하나걸치고있는상태에서 무슨지갑을 훔쳐서 감히어떻게 그런생각과행동을하겠습니까 저는 내년이면 30살이됩니다 저는 정말 엄마한사람을위해삽니다 저희어머니는 머리속에 스위치가있다고하십니다 머리혈관이 점점얇아지고계셔서 일도못하게제가말리고또말려서 지금은 여행다니시라고 많이많이 좋은거좋은것만보고듣고먹으라고하고 더열심히살고있습니다 조금의 충격에도 그스위치는 언제꺼질지모른다고 해서요 전무섭습니다 제가살아있는그리고살고싶은이유는 오로지엄마입니다 솔직히 이해안되시겠지만 친척들연락안하고지냅니다 이세상에서 가족은 엄마단한사람남았습니다 엄마가없으면 저도이자리에서 글조차 못쓰고있겠죠 동정해달란거아닙니다 제얘기를들어주셨으면합니다 아무도믿지않으셔도 믿고 들어주시고 도움을받고싶습니다 제가뭘어떻게 해야하는지요 전가방끈도짧고 배운것도없고 인맥도없습니다 있다한들 말할수없습니다 거짓말탐지날이정해졌습니다 3월14일2시로요 전상관없습니다 단지 그냥저는 이대로 재판을받고 범죄자가되긴싫습니다 이제는 전정말 그러고싶지않습니다 지난과거에 잘못된행동에 벌을받는거라면 이런거말고 다른걸로충분히받겠습니다 이건정말아닌것같습니다 전 아무런힘이없어 도움을청하는일밖에 없다생각합니다 들어주세요 그리고 도와주세요 저희 어머니가 이일을알게될까 너무두렵습니다 서울에서 열심히 공장다니고있는 줄로만아는 어머니에겐 항상 기특한딸인줄만아십니다 전 다시 범죄자꼬리표를달고싶지않습니다 도와주세요
청원답변 275호「신포괄수가제 일부 항암약품 급여 폐지 반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
안녕하십니까? 보건복지부 제2차관 류근혁입니다.

오늘은 신포괄수가제 항암 약품 급여 폐지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에 대해 답변드리고자 합니다. 청원인께서는 청원을 통해 현재 치료 중인 환자들의 치료 연속성 보장, 중증암환자에게 효과 있는 항암제의 조속한 급여화, 신포괄수가제의 항암급여 졸속 폐지 반대라는 세 가지 요구를 하셨습니다.
이 청원에는 21만 2,500명의 국민께서 동의해 주셨습니다.
답변에 앞서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신 모든 환자분들의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 곁에서 간호하고 보살피는 가족분들께도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신포괄수가제와 관련한 논의로 마음이 복잡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답변을 통해 신포괄수가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에 정부가 시행하는 개선안은 그동안 현장에서 잘못 적용되고 있는 신포괄수가제 적용 기준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신포괄수가제는 2009년부터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제도입니다. 의료행위와 약제, 그리고 치료재료에 대한 건강보험 진료비 지불방식은 ‘행위별 수가제’와 '포괄수가제'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이를 '신포괄수가제'로 통합해 환자들이 더 적정하고 합리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새로운 진료비 지불모형을 만들고 점검하는 과정입니다.

행위별 수가제는 진료를 위해 투입하는 개별 행위·약제·치료재료에 대해 각각 비용을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행위별로 비용이 지급되다보니 과잉진료와 진료비 증가라는 문제점이 발견됐습니다. 또 다른 방식인 포괄수가제는 진료내용이 유사한 입원 환자군에 대해 사전에 일정한 급여액을 정해 포괄적으로 진료비를 지불하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반대로 과소진료라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신포괄수가제는 이러한 두 수가제의 단점을 보완해 입원기간 기본적인 서비스는 포괄수가로 묶고, 수술이나 시술 등은 행위별 수가로 별도로 보상하는 제도입니다.

2017년까지는 공공의료기관만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하였으며, 2018년 8월부터 민간의료기관까지 확대하여 2021년 12월 현재는 공공 46개, 민간 52개 총 98개 의료기관이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신포괄수가제는 시범사업입니다. 따라서 다른 시범사업과 마찬가지로 추진과정에서 평가와 연구용역 등을 실시하여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청원인께서 청원에서 말씀하신 면역항암제와 같은 2군 항암제는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 참여 의료기관에서도 다른 의료기관과 동일한 본인부담률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는 국민께서 해당 약제를 사용하여 치료를 받으시는 경우, 어떠한 의료기관에서든 동일한 약제 비용을 지불하셔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신포괄수가제를 민간의료기관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 참여 의료기관과 다른 의료기관의 본인부담률이 다르게 적용되는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결과 특정병원으로 환자가 쏠리고, 지불제도 차이에 따른 병원 간 그리고 환자 간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진료행태가 왜곡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현행 약제 급여기준과도 불일치하는 것으로 정부는 현재 잘못 적용되는 기준을 바로잡아야만 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제도개선방안을 마련하였고, 시행일을 70일 이상 남겨두고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 참여 의료기관에 안내하여 제도 개선에 대한 준비 기간을 가질 수 있게 하였습니다.

다만, 제도 개선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게 기존 환자의 치료 연속성을 보장하는 방안도 마련하였습니다. 현재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 참여 의료기관에서 항암제 등에 대하여 5%의 본인부담을 적용받아 치료받고 계신 분들은 내년에도 종전과 같은 본인부담 수준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정부는 2017년 8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하고, 중증질환을 중심으로 보장성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중증·고액 상위 30대 질환의 건강보험 보장률이 2016년에는 77.3%였는데, 2019년에는 81.3%로 높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항암제를 비롯한 중증 고가 의약품이 급여화 되길 바라시는 안타까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국민께서 약값이 너무 비싸서 약제를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을 줄이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정부는 임상적 유용성과 안전성, 그리고 비용 효과성 등을 고려하며, 중증암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항암제를 비롯한 중증·고가 의약품의 급여화를 지속 추진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의료 접근성이나 편리성 면에서 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훌륭한 제도라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도 코로나19 예방·진단·치료와 관련된 다각적인 건강보험 수가를 마련하여, 코로나 방역의 최후방 수비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속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앞으로도 국민건강을 보장하고 지속 가능한 제도로 건강보험을 발전시켜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소중한 내 청원, 청와대 답변이 궁금하세요?
청와대는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소통 철학을 바탕으로 대통령과 수석·보좌관의 회의, 주목받는 국민청원, 외국 언론이 본 우리 정부, 해외 순방과 그 뒷얘기, 100대 국정과제와 수많은 정책 관련 소식 등 국민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홈페이지와 SNS계정을 통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소식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청와대 공식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카카오 플러스친구 '를 팔로우해주십시오.
더 많은 정보와 투명하고 진솔한 소통으로 국민과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