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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公安培前書 및 광복절에 즈음한 행동강령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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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4 17:09:39 작성자 : kakao - ***
본토 장수왕께서 글로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신묘년(391년) 이래 을사년(1905)까지, 왜나라가 이 금수강산을 넘보거나 노략(擄掠)한 횟수가 얼마며 이 땅의 先祖들이 받은 고통이 어떠했을 지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영군(英君), 명장(名將)이 나서서 토벌(討伐)도 해보았고 다독여보기도 하였건만 순치(馴致)되기는 커녕 임진년(1592)에 이르러서는 제 분수도 모르고 날뛴 탓에 제 몸을 상하게 하였음은 물론 평화롭던 동북아에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끼쳤음을 새삼스레 상기시키노라.

그만 뉘우치고 교훈을 얻었을 법도 하였건만 병자년(1876)에 이르러 다시금 힐끔거리더니 점차 모략, 만행 등 온갖 무도한 자행(恣行)을 더하다가 을사년, 경술년에 끝내 본토의 불구대천지원수역를 자처하였던 사실은 아직도 본토민(本土民)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근자에는 安培公과 그 모리배가 잠복되어 있던 패악근성을 드러낸 채 다시금 발호하여 우리는 물론 만방(萬邦)의 근심덩어리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불민한 탓에 왜나라의 이러한 일련의 작태에 나타난 공통의 특징을 이제야 감지하게 되었으니,
그 첫째는 정신문명이 변변치 못한 반면 그에 어울리지 않는 알량한 힘이라도 얻게되면 이를 주체하지 못한다는 것이요,
둘째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에게는 어떠한 명분을 내세워서라도 반드시 해악을 가한다는 것이다.

왜나라의 이러한 특질은 내재적이고 고질적인 것이어서 이를 치유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서 한순간이라도 내려놓지 않겠노라.

지난 세기에 저질렀던 죄상(罪狀)과 작금의 행패에 대하여 본인의 생각을 전하노니,

그 하나가 다시는 사과, 사죄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이요, 그 둘은 그 정신문명의 미개함을 탓하지 않을 요량이며 다른 하나는 설명이나 설득을 포기할 것이라는 점이니라.

그 입에서 나오는 사과나 사죄가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실익 또한 있겠는가. 다시는 이를 요구할 일이 아니다.

또한 세계문명국의 기본인 삼권분립과 법치주의, 즉 국가권력을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기관에게 맏기고 재판은 독립된 법관이 독립하여 오로지 양심에 따라 진행하며 최종판결은그 누구도 더 이상 다툴 수 없다는 기초적인 상식마저 몰이해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미개함이 횡행하는 나라가 버젓이 문명국인양 행세하며 우리와 이웃하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기는 하여도 그 미개함 또는 뻔뻔함을 깨우치는 것은 가능하지 않거니와 부질없기에 이를 탓하거나 분노하지 않겠다는 것이니라.

나아가, 작정하고 달려드는 흉한(凶漢)에게 설명이나 설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일단 피하거나 제압한 후 상대의 상태 즉, 미성년자인지 혹은 정신지체자인지 봐가며 타일러도 타이르는 것이 이치인지라 지금은 설득할 겨를이 없는 까닭이니라.

부끄럽지만 본국에는 이에 동조하지 않는 부류도 있다는 사실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구나. 하지만 왜나라가 그걸 가지고 오해할 정도로 모자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설득을 포기한다고는 했으나 마지막으로 행여나 하는 마음에 본토 선조 장군 중 한 분의 시를 소개하니 찬찬이 읽어보고 뭔가 깨닫는 바 있기를. . . 온 백성이 倡義討倭에 나서기 전에. . .


神策究天文(귀신 같은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妙算窮地理(오묘한 꾀는 땅의 이치를 깨우쳤네)
戰勝功旣高(싸움에서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이르노라)

비분강개(悲憤慷慨)를 누른 채 무심(無心)을 가장하며 지내던 仁川 村夫가 2019. 광복절 전날 두서없는 글 몇 자 적노라.

- 행동강령 제안-

본국민에게 외람되이 한 말씀 올리오니,
'사과를 요구하지 맙시다'
'분개할지언정 분노하며 흔들리지 맙시다'
'왜나라의 현 위정자들을 설득할 여지가 있다고 믿지 맙시다'
'원인은 추후 따지기로 하고 국난시에는 각자의 본분을 다하고 나아가 합심 또 합심하면 끝내는 승리할 수 있다고 믿읍시다'
꾸벅
인천촌부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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